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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칼럼] 미친 운전자는 운전대에서 끌어내야
미친 운전자는 운전대에서 끌어내야 “미친 운전자가 차를 몰고 거리를 질주하며 사람을 마구 치어 죽이는데, 나는 성직자니까 그 차에 희생된 사람들의 장례나 치러주고 그 가족을 위로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자동차에 뛰어올라 핸들을 빼앗고 미친 운전자를 차에서 끌어내야 하지 않겠는가?”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군부독재에 저항하다 암살당한 엘살바도르의 오스카 로메로 주교와 함께 20세기의 성자(聖者)로 추앙받는 독일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가 세기의 악마, 히틀러 제거작업에 참여하면서 남긴 말이다. 항상 진실한 신앙인의 삶을 고민하던 본회퍼는 성직자로서 남을 죽이는 암살모의에 참여하게 된 마음의 괴로움을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본회퍼는 히틀러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악마로 보았다. 그래서 제거의 정당성을 그렇게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본회퍼는 예수가 했던 것처럼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인간의 노예화에 대해, 권력의 오만과 위선에 대해 절규하며 신앙인으로서, 지식인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던 시대의 양심(시대정신)이었다. 결국 본회퍼는 미치광이 히틀러의 폭주로 고통 받는 조국 독일을 구하기 위해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신앙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의식에서 기꺼이 시대의 십자가를 지고 1945년 4월 9일(독일이 망하기 한 달 전), 의연한 자세로 교수대에 섰다. 그의 나이 39세였다. 만일 그런 본회퍼가 다시 살아 돌아와 우리의 현실을 본다면 분명 그는 문재인을 히틀러 이상 가는 악마 김정은의 ‘대리운전자’로 보고 똑같은 말을 할 것이다. ‘실천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책임질 준비를 하는 데서 나온다’며 역사는 행동하는 자의 몫이라고 믿은 본회퍼는 세기의 악마를 제거해 정의롭고 정직한 역사를 준비하려고 했다. 1933년 1월 30일, 정권을 잡은 히틀러가 독재정치로 흐르자 지식인으로서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한 시대의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그 수난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한 본회퍼는 ‘자유의 도상에서’라는 詩에서 ‘지식인들이 가야할 길’을 이렇게 간명하게 일러준다. ‘순간의 쾌락에 동요하지 말라. 정의를 단호히 행하고 가능성에서 흔들리지 말라. 현실적인 것을 담대히 붙잡으라. 사고(思考)의 세계로 도망치지 말라. 오직 행위에만 자유가 존재한다.(북스조선 참조) 오늘 조국 대한민국이 처한 입장에서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신앙인으로서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을 온 몸으로 실천한 본회포와 우리지식인들과 신앙인들, 그리고 사회지도층, 특히 한국 언을 생각해 본다. 새삼스럽게 조국의 지식인과 신앙인들, 그리고 언론과 사회지도층에게 본회퍼가 詩 ‘자유의 도상’에서 말한 ‘지식인들이 가야할 길’을 들려주는 이유는 ‘양심이 고통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썩은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는 하늘의 법칙을 일깨워주기 위해서다. “모든 사회악은 정치 악에서 나온다”고 한 루소의 말처럼 대한민국을 거덜 내고 있는 모든 적폐(積弊)는 ‘악의 제국’ 북한을 조국(祖國) 이상으로 추앙하는 어둠의 세력(청와대)으로부터 나온다고 해서 누가 감히 시비를 걸 수 있는가? 대한민국 국민의 양심이 살아있고 정신이 깨어있다면 나라꼴이 이렇게 막장으로 치달을 수는 없다. 이게 어디 제대로 나라꼴인가. “조선은 하루가 다르게 붕괴되어가는 한 채의 집입니다. 지금 나라가 나라가 아닙니다.” 율곡(栗谷)이 임금 (宣祖)에게 올린 상소문 만언봉사(萬言封事)의 한 대목이다. 이어서 율곡은 구폐책(求弊策)에서 “정치가 백성에게 끼치는 해독이 얼마나 심각하고 그 폐해가 얼마나 큰지 밝히고 그것을 고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고 강조했다.(송복 교수의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송복 교수는 당시의 조선이 그처럼 심하게 썩어 하루가 다르게 붕괴되어가는 집과 같았어도 조선 500년을 대표하는 정치리더십의 류성룡과 이순신이 있어 임진왜란이란 끔찍한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나라전체를 잃을 뻔 했던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어도 ‘징비’하지 않은 우리에게 역사는 자비롭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류성룡이 “하늘이 돕지 않고는 나라는 다시 일어날 수도 없고, 다시 만들 수도 없는, 그런 나라가 바로 조선이다”라고 한탄한 것처럼, 하루가 다르게 북한에 예속되어가는 대한민국의 참담한 모습, 류성룡(이승만), 이순신(박정희) 없는 오늘, 누가 있어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을 건지 국가적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률곡이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조선을 ‘나라가 나라가 아니다’라며 ‘기둥을 바꾸면 서까래가 내려앉고, 지붕을 고치면 벽이 무너지는, 어느 대목(大木)도 손을 댈 수 없는 집’이라고 한 조선이 바로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대한민국이 6.25 이후 최대의 국가 위기를 맞고 있는 근본 원인은 지옥문턱에 서있으면서도 천국으로 가는 꽃마차를 타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정신 못 차리는 국민에게 있다. 이 착가에서 깨어나야 한다. 후손들에게 북한 같은 ‘악마의 제국’을 물려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제임스 앨런은 “개혁(진보)을 위해서는 반드시 진실한 정신적 삶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촛불혁명’으로 청와대를 점령했다는 점령군의 어느 구석에서 진실한 삶을 찾아볼 수 있나. 국가불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는 판단이 내려질 때 희망을 걸어볼 수 있다. 문제는 ‘독버섯에 사랑의 물을 준다고 해서 절대로 식용버섯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 다시 말해 클라크 장군이 그의 저서 ‘다늅강에서 압록강까지(From Dnube to the Yalu)에서 “공산주의자들은 힘에 약하다. 공산주의를 이기는 수단은 첫째도 힘, 둘째도 힘, 셋째도 힘이다”고 말한 것처럼, 대한민국 중심세력의 힘을 길러야 한다. 대한민국 양심의 힘 말이다. 기무사령부를 동원해 ‘국가보안법’을 없애려든 문재인, ‘군대는 젊은이들이 가서 썩는 곳’이라는 뒤틀린 사고(思考)를 가진 노무현의 자식들,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만들기에 목숨을 걸었던 노무현 정신의 상속자들, 거기에 김정은의 충복(忠僕)들까지 합세해 청와대를 움켜쥐고 대한민국 죽이기에 목숨을 걸고 있다. 이런 뒤틀린 소굴에서 어떻게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길 기대할 수 있는가. 누구를 위한 충성인가? 왜 악의 화신 김정은을 위해 대한민국을 죽이려 하나?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굶어 죽고 맞아 죽으며 노예처럼 살다 짐승처럼 죽어가는 저 생지옥을 우리 후손들이게까지 물려주지 못해 안달들인가? “대북사업만 잘 되면 다른 것은 다 깽판 쳐도 좋다”-대수럽지 않게 들어 넘겼던 노무현의 미치광이 망언이 현실화 되어가는 국가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양심이 아픔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썩은 국민정신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1948년, 스탈린의 흉계로 남한마저 공산화의 길로 끌려가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이승만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을 건국하던 건국주역들의 산 정신과 본회퍼의 ‘노블리스 오블리주’정신이 우리의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여질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죽은 지식인의 사회엔 봄이 오지 않고, 죽은 고목나무엔 꽃이 피지 않는 법이다. 더욱이 찾아오던 봄마저도 양심이 고통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썩은 언론’을 보면 영원히 도망쳐 버릴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도끼자루 썩는 줄도 모르고 달콤한 잠에 취해있는 국민을 깨워야 할 책임은 전적으로 지식인, 지도층 신앙인, 사회지도층, 그리고 산 언론에 있다. 지식인, 신앙인, 사회지도층, 그리고 눈치 보기 100단의 언론에게 부탁한다. 애국자는 못되더라도 역적은 되지 말라! 어떤 면에서는 해방정국 3년의 위기상황보다 더 큰 위기를 맞은 오늘의 대한민국에 봄이 오는 길은, 지식인이 제자리를 찾아 국민을 바로 선도하고, 지도층 신앙인들이 혼돈에 빠져 제 길을 찾지 못하는 국민들의 정신과 마음을 위로하고, 냄새나는 언론이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갈 때, 스스로 활짝 열릴 것이다. 특히 지식인이면서 신앙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시대의 십자가를 지고 간 디트리히 본회퍼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이 대한민국국민의 혼을 깨워주기를 멀리서 기대해 본다. 미친 운전자를 운전대에서 끌러내는 용기가 곧 정의라는 시대정신과 함께. |
2019. 3. 22. 최 응 표(뉴욕에서) 자유민주국민연합 고문 |